만남, 그리 나쁘지 않다.

만남, 그리 나쁘지 않다.

작성일
2017-03-10
카테고리
생각
[002]
3일후에 쓴글.

동아리 멤버들과 만나다.

저번주에 준호햄이 갑작스레 모이자는 문자를 단체카톡에 남겼다. 이리저리 바쁠 것 같아서 난 대답을 안했는데, 몇 일 뒤에, 동수가 세명 단톡방을 만들어 같이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이렇게 만나자고 하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예전에는 동아리 멤버 모임이 있으면,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별로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술자리 자체가 편하지 않았다. 술을 왜 먹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 그래서 항상 도망치고 싶었다. 불편했다.

민재 결혼식 때로 돌아가서...

2017년 2월 25일. 결혼식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동아리 멤버와 만난다. 이번엔 그리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유 자금이 없는 상황에서 거금 5만원을 축의금을 내야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 주에도 어김없이 상훈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항상 갈등 속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주로 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야기의 주제가 된다. 그 중에 "내가 다른 사람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이야기를 준호햄과 술자리에서 똑같이 듣게 된다. 그리고 "술자리"에 대한 나의 잘 못된 생각까지도. 술은 단지, 조금더 편안하게 대화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술자리에서 대화가 '주'이지, 술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술 먹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술을 조금 먹더라도,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물어본다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될리 없다는 것이다. 술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관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이제 만나자는 제안이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그 때의 일이 있은 후, 준호햄과 동수의 제안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면 되는거지. 수영에서 만나자고 했던 약속 장소가 서면으로 바뀌고, 어디갈지 몇바퀴 둘러보다가 고기뷔폐집에 갔다. 고기를 굽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냥 현재 살고 있는 이야기들을.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부담을 느꼈었을까? 이것도 역시, 내가 스스로 가둬둔 나의 모습들일테지. 한 발자국은 나간 것이겠지? 기분이 좋다.

그날 있었던 일들.

민재의 결혼식날 있었던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두었다. 그날 느꼈던 그 감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냥 여기에 남겨두어도 문제없겠지 뭐. 어짜피 이 글을 시간내서 읽을 사람도 없을테니. 나 스스로는, 나 자신을 조금 더 들어내는 하나의 도전이기도 하다. 나의 폐쇄성을 걷어내는 하나의 액션.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난 왜 이렇게 어려워했던 것일까? 나를 보여주는 일들을.
토요일. 민재 결혼식. 범진이 이사와 겹쳤지만, 미리 선약이 되어 있어 결혼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늘은 왠지 다른 날과 다르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내가 할말이 없고 무슨 말을 해야될지 몰라서 부담을 느꼈던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 성공적인 대화라는 것. 남들의 관심, 그들이 삶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것, 그게 지금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식사 자리에 갔을 때, 예전 같았으면 말 없이 그냥 밥을 먹었을 텐데 - 사실 별것 아니지만 - 동수, 태경, 보국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삶을 조금 더 알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바로 떠올랐던 그 생각들을 바로 표현하려고 했다. 머리 속에서만 궁금해하던 것들을, 직접 말로 표현하려 했고, 지금의 생각들을 바로바로 말하려 했다. 그냥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생각했다.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냥 덤덤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민재 결혼식도 결혼식이지만, 내가 무엇인가 적용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별로 부담도 없었고. 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불편하고 부담스러워했을까?
나를 가둬둔 내가 만든 나의 허상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것 같은 기분이다. 그것은 부산으로 버스타고 내려올 때 있었던 일도 한몫 했다. 민재의 아버지께서 노래 한곡하라고 하셨지만, 계속 거절을 했었다. 같이 내려 간 준호햄, 동수, 태경이도 마찮가지. 그 뒤로도 두어번 더 권유를 하셨는데, 그때 뒤에서 민재 아버지께서 '민재 친구들이 제일 어렵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내가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식을 결혼을 보낼 때나 되서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뭔가 애뜻하면서, 안타까움 때문에 마이크를 들었다. 잘 못부르지만, 뭐 어떠랴. 못부르는 것을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는 걸. 잘 부르면 또 잘 부르는대로 좋고. 거의 불러본적도 없는 남행열차를 불렀다. 대부분 트로트를 불러서, 생각나는 트로트가 남행열차밖에 없었기에. 평소보다도 훨씬 못부른 것 같은데.. 뭐 그냥 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하고 나니 뿌듯하다고 할까. 마음도 편하고. 덕분에 그 뒤에 준호햄과 동수도 한곡씩 불렀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부르니 자신들도 안부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뭐 덕분에 잘되었지. 민재 아버지님께서 같이 모여서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하셔서 5만원을 쥐어주셨다. 거절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며 받았다. 민재 친구들이라 어려운 대도 불구하고 챙겨주시는 것과, 결혼식에 와줘서 고맙다는 마음, 아들을 이제 떠나보내야한다는 안타까움, 민재 친구들에게라도 잘 보이고 싶어하는 그 마음 등이 느껴졌다. 버스에 내려 네명이서 이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자고 해서, 서면으로 걸어와 커피숍에 갔다. 태경이는 잠시 이야기 하다가 가고, 동수와 준호햄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속에 있는 모든 걸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냥 나의 상황과 나의 마음들을 그냥 있는대로 표현했다. 그러고 나니, 동수와 준호햄과 조금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뭐 그리 깊지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나의 허상과 대화하던 옛 모습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 뒤로 뭔가 아쉬웠는지 준호햄이 술한자 하고 갈까 제안을 하셨다. 난 평소엔 그냥 집에 가야겠다며 갔을텐데 - 돈도 남았고, 부담도 없고해서 - 준호햄과 부산어묵 술집에 갔다. 어묵탕에 소주와 가게의 분위기가 뭔가 좋았다. 이런 상황과 이런 느낌이 참 오랜만이다. 둘이서 술한잔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준호햄이 대부분 이야기를 하셨지만, 나도 맞장구 치며 잘 이야기를 했다. 내가 술자리에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 그 중에 몇 주전에 상훈이한테 들었었던, - “남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역시나 다들 나를 느끼고 있었던 것인가? 나만 모르고 있었네. 뭐 기분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고, 있는 그대로 말씀해주신 것에 대해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지금 현재 최대 관심을 갖고, 개선하려고 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해서 다시 들으니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술자리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사람들과 만나고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술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 이 부분도 이전에 상훈이가 이야기 해주었던 것인데 - 상훈이 말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으니 한번더 와닿는다.
그 사실 자체를 인지하게 되었고, 나의 솔직한 마음들을 조금 더 공개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구축해놓았던 나의 허상의 벽을 하나는 허물었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깨닫고 나니, 조금은 성장했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모를 의욕이 더 생기는 것 같다. 주말을 편히 쉬고, 사무실에 나오고 나니, 그냥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속으로 이야기 하고 만 것들을 그냥 내뱉었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자신감이 생긴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다.
- 2017년 02월 27일 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