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박 블로그] 하루에도 수천가지 말이 떠오르지만,

[맥박 블로그] 하루에도 수천가지 말이 떠오르지만,

작성일
2011-05-06
카테고리
생각
이번 글은 예전에 운영했던 Pulse-Beat's Bits-Box 블로그의 글을 옮겨 왔다.
: 비공개로 남아있었던 글

하루에도 수천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난 참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것저것 하다보면, 문득 그저께 일이 자꾸 떠오른다. 뭔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 것은 분명하다. 이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인가? 예전의 본 모습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번 굳게 가지고 밀어부치거나, 그 동요로부터 뻗어나가는 물결을 감당해 나의 비뚫어진 모습을 고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던가. 하지만 그런 선택이 간단치가 않다. 다른 일도 아닌 최근에 그 일로 그런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 말이다. 난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 일을 떠올리면 마음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 왜 내가 그런 잘 못된 사실을 말한 댓가로 이런 큰 고통을 수시로 받아야하지? 니가 경험한 것이 나에 대한 실망과 믿음의 상실이라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원인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난 아직 그렇게 확신한다.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모습을 알게 될까봐 두렵긴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내가 기억한다거나 떠올렸으면 차라리 좋겠다. 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라도 들어 사과를 하면, 어떻게든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내 무식한 건지, 나쁜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것인지, 나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은지 몰라도, 내가 너를 부모님께 욕되게 말한 적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옹호뿐. 분명한 것은 니가 무슨 잘못을 했든, 난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말해야할 상황이었다면 너를 옹해줬을 것이라는 것. 그 옹호가 나에게 더 큰 편안함을 줬었으니까. 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에 대해 부모님께 잘못말해서 내가 얻을 이득이란게 도대체 뭐였을까?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만 씌어줘서 내가 얻을 이득이라도 있었을까? 난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혹시나 대학교 다닐 시절 돈을 너에게 빌려준 사실을 부모님께서 아시고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돈을 빌려주고 안값은 사실에 대해 나의 부모님께서 알고 계시다고 너에게 말했으니. 하지만 고등학교하고 나서부터는 내 돈은 내가 관리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 부모님께서 알고 계신것은 초중학교 때의 일이니까. 그 때 내가 무엇이라 말씀드렸을까? 솔직히 말하면, 이 때의 기억은 내게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서 결론이 안난다. 난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과거를 유추해볼 뿐이며, 내 성격상 그런 일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만 해볼 뿐이다. 만약 내가 잘못되었다해도, 15년 전의 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답답하게 살아야하는 것인가? 그래야만 한다면, 그럴 수 밖에.
뭔가 너에게 변명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이라도 쓴다. 하지만 니가 원하는 대답이 위와 같은 대답일지는 모르겠다. 어쨋든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을 타개할 무엇인가라도 해야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결과는 어떻든 간에, 무턱대고 세월에만 맡기는 것은 왠지 껄끄러우니까.
아래 글은 너와 심하게 싸우고 집을 나가서 인제대 도서관에서 적은 글이다. 아마 이 글이 회사지내면서 처음 쓴 일기가 아닐까. 사람은 흔들림 속에서 배우는 가보다. 지금도 그런 흔들림일까?

세상을 향한 도전, 그 중간에 서서? , 상훈이와의 파이팅 - 2010년 1월 21일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보적이 언제인가? 시간에 밀려, 일에 밀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온 지가 어언 4개월 째이다. 시간이 참 빨리가는 구나. 벌써 4개월이라니.
시간이 지나면서 얻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지만, 현재가 왠지 껄끄럽다. 무엇인가 진행이 잘 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뿐인가. 생각해보면, 요즘 일하는게 예전만큼 썩 재미있지 않다. 무엇인가를 해야하는데, 잘 안되어서 슬픈 느낌이랄까?
어플리케이션의 판매량과 일의 진척 상황 등 객관적인 상황을 본다면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팀원간이 조화에서 보면 왠지 나만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이랄까? 정확히 멀어져있다는 느낌이 아니고, 서로 간에 존중이 없어진 상황에 대한 아쉬움?
혜리가 오전에 가면서부터, 상훈이랑 매일 같이 붙어있다보니, 서로에 대해 너무 막대하는 것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상훈이의 장난이 예전처럼 받아지지 않고, 왠지 나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를 바꾸려고,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 그리고 나에 대해 조금 아쉬워하는 듯한 느낌. 그러한 상황이 나를 조금 더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내가 너무 방어적이 된 것이 아닐까? 논리는 따져야하는 상훈이와 무엇인가 느낌으로 말하려 하는 나. 서로 다른 곳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수 밖에. 나를 조금 더 개선시키려는 상훈이와, 나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불만인 나. 그러한 가르침의 방식이 나를 언짢게 하며,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올바른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나. 논리를 따지게 된다면, 조금 더 생각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그것이 현재는 상훈이라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나. 무슨 말을 하든, 상훈이의 의도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무슨 말을 이어서 할지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는 나.
이런 나는 누가 만든 것일까? 몇 주간 나는 이것이 상훈이가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고 생각해온듯 하다.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상훈이고, 나는 계속 당하는 입장에 서서 그것을 방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의 행동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 않나. 왜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상훈이 잘못, 이 상황이 만든 것이 아니고 내가 그렇게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훈이의 단편적인 일면만 보고, 의심하고 짜증내고, 투덜대고 있었던 것이다. 여태껏 쌓여온 감정이라고 상훈이를 탓할것인가? 팀원이니까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야한다는 - 내가 모르고 있었던 - 나의 독단적 리더쉽 때문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저 내가 수긍하고 넘어가는 것이 속편하고 좋다는 안일한 사고를 탓할 것인가? 악플을 보며, 반려되며, 업데이트를 하는 과정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나 때문임을 탓하며, 내가 주눅드는 것을 막으려는 나 스스로의 방어기제를 탓할 것인가? 어플리케이션의 모든 결과는 나에게 달려 있다는 독단적 프로그래머의 현실을 탓할 것인가?
어떤 것을 하든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누구 때문, 어떤 상황, 어떤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그런 사고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도 잘 알지 않는가? 이런 사색의 시간을 통해 현재의 나를 기록하고, 회사의 모습을 적으며, 우리 모두의 행복을 생각해보자. 그것을 이렇게 글로 적어보면서 박혀버린 관념의 틀을 깨부수며, 말랑말랑한 유연함을 가지면서, 사람들과 친구들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익히자. 서로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면서 친구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고, 존중하는 자세를 기억하면서 온전한 나의 자존감이 생길 수 있도록 망치로 두드리며, 펄펄 끊는 화로에 몸을 던지면서, 차가운 물에 식히는 과정을 또 반복하자. 그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며, 우리 가족을 지키는 일이며, 우리 회사를 발전시키는 일이며,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다. 웃으며, 행복하자.
- 상훈이와의 몇일 간의 싸움 끝에,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 2010년 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