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작성일
2017-03-13
카테고리
생각
[005]

젓가락을 떨어뜨리다.

엊그제는 상훈이와 피자로 부터 시작하여, 몇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간의 감정 싸움으로 시작해 나의 부족함이 자아낸 대화의 어긋남을 또 한번 느꼈다. 서로 상태가 많이 안좋았던지, 난 오랜만에 평소와는 다른 감정이 일어났다. 평소같았으면 그저 그려려니 했었던 일들을, 어제는 뭔가 삐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일로만 매듭을 지었다면, 금방 티격태격하고 끝났을지도 모르겠으나, 사과를 하는 방식과 내가 표현을 잘 못하는 탓에 돌아돌아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었다.
난 듣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대부분 상황에서 말을 하는 것 보다는 듣는 입장이 많았었다. 그래서 난 남들보다 듣는 것을 잘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매우 집중해서 듣고는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왜 이렇게 왔는지, 그리고 조금 전에 물었던 질문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의 말을 집중해서 들으려고 했는데, 집중이 흩트러지고,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주의 깊게 잘 듣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대화를 이어갈 때 멍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마음에 떠올랐던 나의 생각과 실제로 말하는 것이 다를 경우가 많았다. 나를 포장하기 위한 말들, 조금 더 선의, 대의에 기반을 둔 행동이었다고 어필을 하는 경우도 그렇고, 내가 어떤 행동을 했던 동기를 조금 더 상대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행동했던 일들도 많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 자체도 놀랍다. 나의 행동과 말들이 믿음이 가지 않았던 것이지.
나의 잘못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건, 상대방이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은 내 잘못일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지적을 하면 굉장히 방어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행동이 당신을 기분 나쁘게 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말하기 바빴다. 그리고 나를 이해해달라고 어필을 했다. 상대방이 기분 나빴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에 대한 사과를 해야한다.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은 지금 상대방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이 나쁠 뿐이다.
드라이기와 젓가락 오늘 아침에 상훈이보다 먼저 일어나서, 회사에 나갈 채비를 했다. 평소와 다름 없이 머리를 말리려 드라이기를 썼다. 갑자기 잠에서 깬 상훈이가, 자고 있을 땐 화장실에서 드라이기를 하는 게 어떻느냐고 말했다. - 평소와 다름 없이, 이전에도 이런 상황이 여러번 있었는데, 아무말이 없었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래. 라고 말했고, 일단 드라이기는 그 자리에서 마저 마무리했다. 그리고 상훈이는 '그게 끝이가, 뭐 더 없냐'고 말을 했다. '내일 부터 그렇게 할게'라고 답을 했다.
책상과 식탁이 어질러져 있으면 치워주고 가곤 한다. 하루 종일 그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상훈이가 조금 더 좋은 공간에서 일을 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책상에 있던 그릇을 정리하던 중에 그 위에 올려놓아져 있던 젓가락이 떨어졌다. 상훈이는 조용히 해주면 안되겠냐고 말했다. 뭔가 어떨떨했다. 그 때 내가 한 말은 이것저것 정리해주고 갈라고 했는데, 그냥 갈게.였다. 그리곤 상훈이는 어제 서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했다. 일단 젓가락을 떨어뜨렸고, 그것을 기분 나쁘게 했고, 그것에 대한 먼저 사과가 먼저라고. 왜 자꾸 나의 잘못을 부연설명을 부치면서, 포장, 변명하려고 하느냐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고, 그냥 하던 일들 멈추고 집을 나섰다. 사무실로 이동하는 중,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난 참 잘못을 인정을 안한다. 그냥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리도 끝날 것을, 왠지 그러한 지적이, 나의 선의의 마음까지 지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 내가 너를 위한 것이었는데, 그까짓게 뭐라고 지적하는가 - 혹은, 내가 좀 잘못은 했지만,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는 사이 아니냐고, 혹은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나의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그런 지적을 안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일 수도. 나도 참 나를 이해해주기만 바라기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인 것 같다. 남을 이해해주지도 않으면서.
나는 말을 잘못한다. 난 내가 말을 아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말을 잘 하지못하니, 침묵으로 넘어갈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 자신을 과묵하고, 조용한 사람이라고 포장을 했다.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그 편함의 차이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주로 조용한 사람에 속한다. 주로 듣는다. 이야기에 잘 참여하지도 않는다. 물어본 말에만 대답을 하고, 호응만 해줄 뿐이다. 난 말을 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조용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감정으로 인한 대화는 본질을 벗어날 때가 많다. 나는 본질을 벗어난 말들을 할 경우가 많았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가 이 대화를 왜 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때가 종종 있다. 사실 관계만을 이야기하면 그것으로 끝나는데, 감정으로 인해, 이런 저런 과거 사실들까지 가지고 오면, 이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문제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는 참 어렵다. 과거의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수영장과 수영복 일요일, 수영장에 갔다. 샤워실에 왔는데 상훈이 수영복 가방이 빠졌다. 아차, 싶었다. 예전에 한번 상훈이 수영복이 없어져서, 목욕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내가 미안한 탓에 수영복을 직접 사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훈이는 차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책임에 대해서 말했다. 80정도는 내 잘못이고, 20정도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난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예전에도 나와 상훈이의 수영 가방을 차에 놓고 온적이 있었는데, 지는 사람이 가지러 갔다 오는 가위바위보를 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냥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자신이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수영 가방을 가지고 왔다. 난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수영복 가지로 가는 것은 귀찮기는 하지만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그것가지고, 가위바위보를 하느냐고 따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뭔가 모르게 한숨섞인 표정과 목소리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수영을 하면서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이상한 기분으로 만들었는가? 일차적으로는 어제 늦게까지 게임하다가 자서, 컨디션이 안좋았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책임 소제에 대한 상훈이 생각 때문. 상훈이는 다른 가방을 들고 다니기에, 난 목욕 바구니를 내가 들어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목욕 바구니는 같이 사용하고 있는 욕실도구와 수영복 등이 들어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목욕 바구니를 내가 직접 들었는데, 이번에도 니가 목욕바구니를 들고 왔으니,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고 말하는 상훈이가 밉상처럼 보였기 때문. 그리고 80:20의 책임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인심써서 20정도로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그 표정과 행동으로 내가 넘겨짚은 것이겠지. 그리고 예전도 같은 상황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그런식으로 진행을 했냐고 물어보니, 그때의 그 일은 철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불과 몇주전의 이야기지만. 같은 상황에 같은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른 모습을 본 나는 얼떨떨했다. 결국은 왜 그때 그런 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50:50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 달리, 상훈이는 나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는 그 마음때문에 꺼림직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감정에 타격을 입어,뭔가 짜증섞인 아쉬움이 느껴졌었다. 그래도 역시 수영을 하고 나면 그런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아직 명확한 이해는 아닌 것 같지만, 논쟁에, 감정 싸움이 들어간다면, 다른 본질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남들이 나는 보는 시선과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다르다. 남이 오히려 나를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다 내가 만든 나의 모습과, 다른 사람이 직접 보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모습에 갖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긍정'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부정'으로 보인다면? 가식, 교만, 위선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느꼈던 감정 그 자체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긍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실제로는 '부정'이 되는 것인가? 의도 자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거나, 그게 거짓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일텐데. 이런 상황들은 나로서는 굉장히 판단하기 어렵다. 굉장히 나에게 관심가져주는 사람의 조언을 통해서나, 아마 다른 그룹, 모임들을 통해 나의 색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의사소통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인용을 하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가끔씩 상대방의 의견을 마치 나의 의견인양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상대방에 대해 경청을 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매우 좋지 않은 경우니 매우 지양해야할 상황이다. 그것과 반대로, 이야기를 진행 중에 다른 사람의 말들을 인용하는 경우가 대화에서 매우 도움이 된다. 당신 덕분에 이런 의견이 진행되었고, 그 사실에 감사하는 것들. 그런 것들 자체가 그 사람에 대한 배려이고, 경청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 사실들에 상대방은 토론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있는 글들은 상훈이와의 삶과 대화를 통해서 얻게 되는 것들임을 말해준다. 상훈이의 입을 통해 나온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며, 이와 더불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에 대한 기록들이다. 나 스스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끊임없이 관심가져주고, 지적(?), 조언해주는 상훈이가 고맙다.

나는 나를 참 모른다.

나는 나를 굉장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을 다른 사람이 말해준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것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겠지만, 그런 부정적인 사실들을 내게 직접 말해주는 주변 사람이 고맙다. 나를 성장해줄 수 있는 동기를 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는 스트레스도 받고, 나를 방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한다. 변명과 자기방어적인 태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난 그저 잘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그것뿐. 진정으로 양쪽 모두를 위해서라면, 담담히 받아들이고, 미안한 것은 미안하다고 하고, 고마운 것은 고맙다고 해야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 사실 자체를 이론적으로는 알겠다. 몇 번 더 심하게 데이고 나면, 나의 몸 속에 박혀 체화가 되겠지. 그렇게 되려면 여러 상황을 만나봐야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해야한다.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