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우준이 이사를 도와주러간 날.
우준이의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와우. 역시 새롭게 도배를 하고 장판을 까니 완전 새집 같다. 화장실도 리모델링을 쫙~ 해놓으니 더더욱 더. 이 집은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과 구조가 완전히 똑같아서 너무나도 익숙한 집처럼 느껴졌다. 방의 크기만 조금씩 차이가 있을뿐. 같은 회사에서 지은 것이겠지? 신기방기. 그래서 더 정겹다. 신기하기도하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긴 하지만, 아직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정리 시작. 다른 친구들은 아직 남은 이사짐을 옴기느라 다른 집으로 이동했고, 나랑 정현이는 집에서 청소를 하기로 했다. 같이 방바닥을 닦고, 그 이후에 정현이는 싱크대와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 동안 나는 문고리를 달았는데, 생전 처음 달아보는 문고리.. 설명서를 보고 차근차근 해봤는데도 문이 제대로 닫히질 않는다. 문과 벽에 있는 홈이 잘 맞지 않아서 그랬는데, 덕분에 벽에 붙어 있는 나무를 깎아내야했다. 약간 틈이 생기긴 했지만 뭐 어쩌랴 안들어가는걸. 그래도 모두 성공!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모두 모여서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 잡채밥,탕수육 시켜먹었다. 역시 이사엔 중국집이지. 난 짬뽕을 시켰는데, 무슨 짬뽕이 이리도 양이 많은지. 어릴 적에는 이 한 그릇을 어떻게 다 먹은거지?
새로운 재능? 양궁.
우준이 집 앞에 양궁장이 새로 생겼는데, 한번 해보자했다. 왠지 재밌을 것 같았다. 우리 나라가 양궁 최강 나라이니, 나도 왠지 잘 쏠 것만 같은 이 느낌! 정현이는 먼저 집으로 가고, 다섯명이서 내기 양궁을 했다. 1, 2, 3등은 돈을 안내고, 4, 5등이 각각 만원, 만오천원씩 내는 것으로. 가격은 24발에 오천원. 장비를 착용하고, 양궁을 들고 있으니, 뭔가 짜릿했다. 어떻게 쏴야할지 한사람씩 가르켜주었는데 느낌이 좋았다.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 느낌. 3등 이상만 하자.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24발중 14발은 연습하는 것으로 하고, 점수 내기는 마지막 10발로 하기로 했다. 처음엔 과녘의 중간에 맞춰쐈는데도, 이상하게 과녘의 하단 끝으로 화살이 꽂혔다. 배운대로 자세를 했는데도. 군대에 사격을 할 때처럼 호흡을 편안히 쉬도록 해보았다. 조금씩 영점 조절이 되는 것 같았다. 손을 턱에 꽉 붙이고, 같은 방식으로 쏘려고 했다. 각자 10발을 남기고 연습. 각자 준비를 하고, 시합을 시작했다. 한발 한발씩 천천히 쏜다. 여기저기서 환호성, 실망감이 섞인 소리들 등등이 들려온다. 이 상황이 재밌다. 그래도 집중했다. 호흡도 천천히. 덕.분.에. 88점!!! 꽤나 잘했다. 우훼훼헹휑헹헹헹헹. 내 점수에 너무 필이 꽂혀있어서 다른 사람 점수가 애매까리한데, 64, 65, 75? 80? 이정도였던 것 같다. 상훈, 우준, 범진-남균(?), 나. 1등이다. 혹시.. 이건.. 나의 새로운 재능!?
집들이 기념 술자리 - 이마트로 가서 이것저것 사다.
우준이가 술까지 쏜다. 다섯명이서 우루루 몰려가 각자 술과 안주들을 챙겨서 들고 왔다. 그때부터 술을 먹었는데, 난 오랜만에 가져보는 술자리구나.
중간에 내가 계속 말없이 앉아 있자 범진이가 '니는 왜 말을 안하고 듣고만 있느냐'고 물었다. 그 때생각났던 대답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난 듣고 있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익숙했다. 무엇인가 다른 이유들이 더 있지는 않을까? '너도 너의 생각이 있을 텐데, 왜 그 생각을 말하지 않느냐'고 범진이가 물었다.
난 과연 나의 생각이 있는 것인가? 둘이 의견이 대립되는 경우가 있다면, 두 사람마다 각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취향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에 의해 결정된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내가 뭐라고, '이리 해라', '저리 해라'라고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고 만다. 나라면 '나는 이런 성향이니, 이쪽으로 조금 더 생각하고 있다' 정도의 말이라면 할 수 있지만, 내가 그 사람보고 '감놔라, 배놔라' 할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의 흐름은, 내가 말을 잘 안하는 이유의 일부기도 한대, 전체적으로 보면 나의 주관이 없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인 것 같긴 하다. 어느 것을 더 선호하는지,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하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상황에, 내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을 못하고, 그것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그냥 듣고만 있을 수 밖에...
즉, '너의 생각이 있을 텐데...?'라는 전제부터가 나에겐 안맞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게 이어가다보면, '난 나의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결론이 된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애매모호한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두 가지 대립되는 상황이 있을 때, 그것이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경우라면, 두 가지 상황에 대해 장단점에 대해 각각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조건이 붙게 된다. 이런 상황일 때는 이런 결정을, 저런 상황일 때는 저런 결정을 하면 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 한가지로 결정하는 것이 꼭 정답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때로는 이런한 사고의 흐름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답답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상훈이가 최근에 나에게 한 말이다. 이런 애매모호한 태도는 내가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 내가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한 단계 더 들어 가자면, 남들에게 내 자신의 모든 것이 옳게 보여지고 싶은 욕구,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욕심이라고. - 적당한 예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딱 떠오르는 상황이 생각이 안나네.
그래서?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보다 타인이 나를 보고 하는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상훈.왈) 우유부단함과 결정에 대한 책임 회피, 두루두루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들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 바로 보이는 것들인데, 나만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일 것이다. 난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건데, 실제로는 남들에게 밑보이고 있다는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부분은 고쳐야 마땅하다.
우준이 이사를 도와주러 갔지만...
역시 기억에 남는 건, 내 위주의 기억만 남는구나.
상훈이와 같이 김해로 넘어오면서 나누었던, 나의 장점에 관한 것을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상훈이가 내가 보는 다른 친구들의 장점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이 부분은 이후에 작성해봐야지.
그 밖에 기억에 남는 장면들
- 우준이 커플의 중간점검 : 범진 왈. '책임은 내가 못 지는데, 부담은 내가 질께....' 으잉!?!?!?
- 범진이를 입막게 하는 방법 : 팔씨름.
- 생각보다 더 예민한 우준 : 나중에 상훈이와 같이 살면... 후우... 과연... 궁금...
- 우준이의 학교 생활 : 정보통신 전문가, 우리들 중에는 가장 컴맹. 이 부분에선 빵 터짐.
- 노래방 가는길, 범진이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다. : 아쉬움이 느껴지는 뒷 모습.
-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은 노래방. 잘 못불러도 그냥 부르면 되는거지뭐. 그렇게 생각하니 더 잘 부르고 싶다는 욕구가 생김.
- 3월 15일 (수) 서울 올라가는 길에 작성. 기억에 남은 추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