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예전에 운영했던 Pulse-Beat's Bits-Box 블로그의 글을 옮겨 왔다.: 비공개로 남아있었던 글
침대, 휴식, 깨어있는, 졸린, 꿈, 깨어나다.
깜빡 잠들다, 침대시트, 끄덕끄덕 졸다.
잠, 코를 골다. 어두움, 평화로움, 하품하다.
피드백, 어떤 원인에 의해 나타난 결과가 다시 원인에 작용해 그 결과를 줄이거나 늘리는 '자동 조절 원리'를 말하며 이러한 피드백 과정을 통해 인체의 항상성이 유지된다.
항상성, 자동정상화장치라고도 하며, 외부 환경과 생물체 내의 변화에 대응하여 순간순간 생물체 내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현상을 말하며, 자율 신경계와 내분비계(호르몬)의 상호협조로 이루어진다.
나에겐 어떠한 피드백이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소위 말하면, 이 글을 적음으로 해서 어떤 피드백이 있으며, 그것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일단 첫번째로 생각하면, 이 글을 받은 혹은 보는 사람들이 나에게 이 글에 대해, 혹은 나에 대해 말을 해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 지금 당장은 그러한 피드백이 없다. 글을 적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의 희미한 모습만 떠오르고 돌아올 뿐. 그래서 그런지, 왠지 점점 열정이 식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아무런 대답도 없이 글을 적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이 바라던 것일까?, 내가 올바르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혹은 이메일 휴지통 속에나 들어앉아 잇는 것이 아닐까? 등의 질문에 어떠한 답도 알 수 없어 답답해 한다. 그리고 혹시나 이 글이 그다지 의미없이 죽 읽혀지고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그러한 글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 같은 것도 든다. 오히려 많은 말들로 인해, 그 말의 진정성이 약해질까봐 겁도 나고. 어쨋든 이러한 질문의 답은 현재로서는 알길이 없고, 알 수 있었으면 하면서도, 알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사람은 항상 모순적인 성향이 많은 것 같다. 이중적인 관념을 모두다 같고 있으면서, 이럴 땐 저것, 저럴 땐 이것을 생각하며 답답해하고 스트레스 받는다. 혹은 이럴 땐 저것, 저럴 땐 이것을 외치며, 자신을 방어하기도 하면서 공격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마찮가지고.
두 번째 피드백이라고 한다면, 내가 나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피드백이랄까? 글을 적으면 분명 생각이 정리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들에 생각해볼 여유를 주기도 한다. 혹시 이렇지는 않을까? 저렇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은 조금더 다양한 방면에서 생각하도록 한다. 그러다 보면 간혹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나 자신의 경험과 추억들에 해당하는 기억을 조작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사실로 여겼던 일들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내가 나에 대해 느끼는 기억들만 기억하고 있다면? 사건에 대해 느꼈던 강렬한 감정만 기억하지, 실제로 겪었던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수많은 조각을 마추는 것처럼 자신이 재구성하고 조작한다. 그리고 그 경험 이후에 얼마나 빈번히 그 때의 장면을 불러내고,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에 따라 그 일에 대한 기억이 달라진다. 이러한 피드백은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을 수 있겠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그 사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즉, 그 사실에 대해, 그 의미를 어떻게 두냐에 따라 사건에 대해 좋은 면만, 혹은 나쁜 면만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내가 계속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너무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피드백. 어떠한 경로이든 피드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침대", "졸다", "수면", "휘발유"... 맨 위에 읽은 단어 목록 중에 없는 단어는? 휘발유? 없었지. "수면"은? 있엇을까? 여기 있는 예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나온 내용인데, 참 놀랍고도 당황스럽다. 기억의 왜곡, 우리의 뇌가 우리를 어떻게 속이는 지, 흥미롭다.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왠지 모를 꺼름직한 마음. 그것이 왜인지 나도 잘안다. 그러나 표현하고 싶지가 않다. 왠지 쪼잔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그리고 또 반성을 한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자꾸 머리속에 맴돈다. 어떻게 그 힘든, 고난한 가장일을 수십년간 해오셨던가.나는 성인군자가 아닌 것 같다. 마음껏 베풀고 바라는 것 없이 남들을 위하는 그런 마음. 예전엔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자신의 이익, 불편, 손해 등을 따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하면 그도 이렇게 해줘야할텐데. 그가 이만큼 해줬으니, 나도 이만큼은 해줘야되지 않겠어? 라는 생각들. 참 어리석다. 쪼잔하다. 마음껏 베풀지 못하면서 그 스트레스로 얼굴만 찌푸리고 있다니 더 한심하다. 마음 수련을 해야할 때인가? 하루하루 감사한일을 찾고, 적어보여, 하루를 마감하고, 아침에 눈을 떠 살아있음에, 행복한 하루를 주신 것에 감사해야하지 않을까? 무엇인가 집중할 것이 필요하고, 취미를 삼을 만할 일도 있어야되지 않을까? 내 자신이 스스로 부족하도 느끼고, 자존감이 낮아질 때, 남들을 탓함으로써 조금 더 내가 낳아보고 싶은건 아닐까? 이것 저것 따지며, 그 사람의 나쁜점을 들먹여, 그가 나보다 뛰어남을 조금 깍아내려보고 싶었던 것일가?많이 웃는 사람. 성공하는 요건 중에 첫번째로 꼽힌다. 항상 웃고 즐기며 삶을 살아가도 부족한 삶인데, 너무나도 인상을 쓰고 살며 있지는 않은가? 별것아닌 일에도 인상을 찌푸리다니 단순한 소심함의 극치이다. 삶이 얼마나 된다고 인상을 찌푸리며 살아갈 텐가? 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한 순간순간이 뜻깊은 일이다. 나를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해주고, 나의 나약한 마음을 이겨내게 해준 사람들. 더 감사하고 더 감사하고 은혜를 갚아야하는데, 난 더욱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려 하다니. 행복 속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고, 기쁨 속에서도 기쁨을 등지는 내 모습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 삶이 다하기 전에, 행복하게만 살다가 가자. 순간순간 짜증과 화가 온다해도 나의 긑을 생각하고 조금더 마음의 여유를 두고 생각하자. 짧은 인생 즐겁게만 살다가면 후회없지 않을까? 너무 빡박하게 살지 말고, 항상 즐기면서 행복하고, 웃으면서 살자.그리고 더불어 수십년간 나를 뒷받침해준 부모님의 노고를 잊지 말자. 가정일은 쉬운게 아니다. 나의 작은 행동들에 얼마나 속앓이를 하셨을까?감사하자. 감사하자. 또 감사하자. - 2011년 2월 25일 -, 고단이 느껴지는 아침에.
힘든 가정일을 기꺼히 해내시는 부모님이 존경스럽다. 한달 정도의 주방일을 맡고 해내다 보니, 처음 몇 주간 느꼈던 즐거움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다지 가정일에 대한 인정도 못받으며, 아무런 말도 없이 꾸준히 일을 해오고 계신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난 겨우 한달을 해놓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가정일이 당연한 듯 나의 일이 되어 버린다는게 싫었던 것 같다. 돌아가면서 하는 게 오히려 더 낳았던 걸까?
내가 주방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내가 너와 싸우고 집을 나갔을 때였다. 내가 그 때 느꼈던 초라함과 나에 대한 한심함. 그리고 예전만큼 친구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고, 너그럽게 다가가지 못한 나에 대한 불찰, 분노, 열등의식. 여러 가지일들이 복합적으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었다. 다시 시작하자고. 친구들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마음껏 베풀자는 의미였다. 그래서 여러가지 요리를 만들어주고, 주방을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하였다. 그릇을 닦으면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나의 때뭇은 몸과 마음을 닦기 위함이였다. 너에 대한 의구심을 씻어내고, 좋지 않은 기억들을 흘려 보내려 노력했다. 그리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나를 조금 더 존중해주는 너희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달여간의 주방일도 퇴색되기 시작했다. 사업상의 스트레스가 나의 좋은 목적을 기억 못하게 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선행으로 베푼 일에 대해 불만과 믿지 못하는 눈빛을 받으니, 나도 무엇인가 화가 난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런 욕을 들으면서까지 해야하나?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이제 하나하나 이래라 저래라 하니, 참 답답하다. 너희도 조금씩 도와주면 좋을 텐데, 내가 하는 게 당연한게 되어버렸네. 이젠 그다지 고마워하지도 않는 것 같고. 처음부터 너무 잘해주는게 아니었는데, 눈만 높아졌네? 뭐 이리 요구하는게 많어? 뭐,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저런 생각들은 한번이라도 안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곧 금방 추스렸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잠깐씩 스쳐지나갔을 뿐이다. "니가 뭐 그렇지, 저런 생각들 하면서 나한테 얘기도 않하고,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있으니, 얼굴이 그 모양이지." 라고 생각한다면 섭섭하다. - 니가 오해할까봐 덧붙이는 글, 오해는 무섭다. 말이 무섭다.) 그렇다. 나는 처음 가졌던 마음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베푸는 것이 아닌, 무엇을 바라면서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방일을 하는 의미를 퇴색되고 빛바랬기에, 모두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하는 것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한번 겪어봐야 그 사람의 진짜 심정을 안다는게 맞는 말인 것 같다. 그 일로 인해 부모님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어쨋든 그 사실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실패... 그리고 성장. 이 둘은 끊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